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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소멸과 지배의 합리성: 왜 대중은 보호가 아닌 이용의 대상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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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애국주의는 대중이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주체라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현실의 광장과 시장에서 관찰되는 대중의 민낯은 이 낭만적 전제를 무참히 해체한다. 합리적 이성보다 맹목적 감정주의에 휩쓸리고, 장기적 통찰보다 눈앞의 즉각적인 자극과 이익에 매몰되는 다수의 모습을 목도할 때, 지적·경제적 자립을 이룬 개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연민의 철회와 관점의 전환이다. 대중을 구원해야 할 '동료 시민'에서, 철저히 분석하고 관리해야 할 '이용의 대상'으로 재규정하는 것은 도덕적 타락이 아닌 구조적 필연이다.

계몽의 비효율성과 매몰 비용

어리석은 다수를 계몽하여 사회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시도는 경제학적으로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은 투자다. 대중은 진실을 마주할 고통보다 거짓이 주는 안락함을 선호한다. 복잡한 사실관계와 경제적 자립의 책임 앞에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무능과 실패를 환경이나 기득권의 탓으로 돌리는 피해의식에 열광한다. 이러한 집단에게 이성과 합리의 언어를 전달하려는 노력은 반성 대신 맹렬한 적개심과 하향 평준화의 압력만을 불러올 뿐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매몰 비용(Sunk Cost)을 끝없이 누적시키는 비이성적 행위다.

감정의 시장화와 합리적 거래

대중이 이성적 주체가 아닌 본능과 감정에 지배되는 소비재로 전락할 때, 시장 생태계는 그에 맞춘 새로운 거래 체계를 형성한다. 대중이 자극적인 분노, 알량한 위로, 그리고 헛된 일확천금의 환상을 원한다면, 그 수요에 맞춰 상품을 공급하고 자본을 회수하는 것은 완벽히 합리적인 시장 메커니즘이다. 파편화된 알고리즘 콘텐츠, 자극적인 포퓰리즘 정치, 실체 없는 금융 스캠에 대중이 몰려드는 것은 누가 강제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순간의 도파민을 위해 자신의 자본과 미래를 지불한 것이다. 이를 '착취'라고 비난하는 것은 시장의 본질을 오독한 것이다. 이는 스스로 지적 자기결정권을 방기한 자들이 지불하는 자발적 거래이자, 무지와 천박함에 대한 정당한 시장 가격(Market Price)이다.

평등의 도그마와 위계의 정당성

모든 인간이 동등한 역량과 가치를 지닌다는 평등의 도그마는, 탁월함을 억압하고 사회적 에너지를 하향 평준화하는 가장 위험한 위선이다. 스스로의 욕망을 통제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선도적 주체와, 눈앞의 본능에 휘둘리며 선동의 불쏘시개로 소비되는 대중이 어떻게 같은 선상에 설 수 있는가. 이 압도적인 역량의 격차를 인정할 때, 지배와 종속의 위계(Hierarchy)는 인위적인 억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태적 질서로 격상된다. 방향을 상실한 대중을 통제하고 그들의 에너지를 조직하여 상위의 가치와 부를 창출하는 것은, 무질서한 맹목성에 질서를 부여하는 가장 효율적인 아키텍처(Architecture)다.

연민을 넘어선 냉철한 실용주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신화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철저한 실용주의다. 어리석은 다수를 위해 헌신하거나 그들의 수준에 맞춰 보폭을 늦추는 것은, 공동체 전체를 정체와 퇴행의 늪으로 빠뜨릴 뿐이다.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는 주체들에게 대중은 더 이상 감정적 동일시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철저히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시장의 흐름과 자본의 증식을 위해 정교하게 다루어야 할 대상이자 질료(質料)에 불과하다.

어설픈 연민과 낭만적 애국심을 걷어낼 때 비로소 세상의 진짜 권력 구조가 보인다. 어리석음이 보편화된 시대에, 대중을 딛고 서서 그들의 맹목성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무지한 대중에 휩쓸려 동반 추락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과 초월적 성취를 지켜내는 가장 냉철하고 완결된 생존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