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ublished on
한국 사회의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에 대한 심층 분석
- Authors
- Name
- 스타차일드
서론: '사다리 걷어차기' 개념 및 한국적 맥락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는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그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제시한 개념으로,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었던 보호무역주의와 정부 개입 등의 정책을 후발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 무역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요하며 성장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위선적 행태를 비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비판은 19세기 영국이 강력한 보호주의로 산업을 육성한 후 자유 무역을 주창했던 것과,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산업 우위를 확보한 뒤 자유 무역을 강조했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다. 장 교수는 선진국들이 유치산업 보호, 관세, 보조금, 반덤핑 관세, 일방적 무역 제재 등을 통해 자국 산업을 육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이러한 정책적 수단을 박탈하는 것이 후발 주자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행위임을 강조한다.
원래 국제 경제학적 개념으로 제시된 '사다리 걷어차기'는 한국 사회 내부에서 계층 이동을 저해하는 행위나 제도를 비판하는 데 광범위하게 적용되며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는 흔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인식과 연결되어, 특정 집단이나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보한 후, 후배 세대나 취약 계층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상향 이동을 가로막는 행태를 지칭하는 사회적 비판으로 사용된다.
본 보고서는 장하준 교수의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한국이 개발도상국 시기에 국제 무역 및 기술 분야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경험하거나 혹은 자체적으로 '사다리'를 활용한 사례들을 분석한다. 나아가 선진국 진입 이후 한국 사회 내부에서 교육, 노동,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사다리 걷어차기' 양상과 그 사회경제적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I. 한국 경제 발전 과정에서의 '사다리 걷어차기' 분석
1. 보호무역주의와 산업 육성 정책
한국은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 시작)을 통해 국가 주도의 강력한 경제 개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 육성과 보호주의를 적극적으로 채택하였으며, 이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유치산업 이론(infant industry theory)에 충실히 따른 전략이었다. 리스트의 이론은 산업 발전 단계에 따라 무역 정책을 조정해야 하며, 초기 단계에서는 보호무역을 통해 제조업을 육성해야 함을 강조한다. 한국은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산업 기반이 취약했던 시기에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1970년대에 추진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은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보호 아래 이루어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정부는 철강, 비철금속, 조선, 기계, 전자, 화학 등 6개 전략 업종을 선정하고, 이들 중화학공업 업체들에게 시중금리보다 저렴한 자금을 대출해주고, 세금 혜택을 제공하며, 관세 및 보조금 지급을 통해 국내 시장을 보호하여 이들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대기업들이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여러 계열사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며 재벌 그룹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및 산업 육성 정책의 결과, 중화학공업 제품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 12.8%에서 1980년 41.5%로 급증하는 등 한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1977년에는 총 수출액 100억 달러를 조기 달성하였으며, 이는 당초 1981년까지 목표했던 1인당 국민총생산(GNP) 1,000달러와 수출 100억 달러를 앞당겨 달성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나아가 이러한 산업 전환은 한국의 산업 구조를 노동집약적 경공업 중심에서 기술집약적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고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의 초기 경제 성장은 선진국이 과거에 사용했던 보호무역주의 정책, 즉 유치산업 보호와 정부 주도 산업 육성 전략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성공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 이론에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행태가 위선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국 내부의 반증적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스스로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를 활용하여 경제적 도약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시기 보호무역을 통해 성장했으나,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으로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되면서 국제 사회에서 선진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다른 후발 국가들에게는 자유무역을 요구하는 입장에 서게 될 수 있다. 이는 과거 자신들이 사용했던 '사다리'를 이제는 다른 이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걷어차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실제로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과거 보호무역을 외치던 국가들이 현재 자유무역을 외치고, 후발 국가인 중국이 오히려 자유무역을 외치는 역설적 상황을 언급하며, 이러한 국제 무역 질서의 변화 속에서 '사다리 걷어차기' 이론이 여전히 유효함을 시사한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국제적 역학 관계 속에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입지 사이에서 복합적인 정책적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부 주도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수입선다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이 정책은 특히 일본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일본제 공산품(완제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등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 장벽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스크린 쿼터제'는 자국 영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문화 산업 보호 정책으로, 외국 영화 상영 일수를 제한하여 국내 영화의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특정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한편, 한국이 고도 성장을 이루던 1970년대 후반에는 제2차 석유파동 등으로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시기 선진국들은 한국 수출품에 대한 수입 규제 조치를 강화하였으며 , 이는 한국이 국제 무역 환경에서 '사다리 걷어차기'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은 후발 주자로서 겪었던 어려움을 상기시키며, 현재 한국의 국제 무역 정책 방향 설정에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된다.
2. 지적재산권 정책의 변화
한국은 경제 성장 초기 단계에서 '모방자 전략(Fast Follower)'을 통해 선진국의 기술을 흡수하고 학습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 시기에는 기술 이전을 통해 기술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이를 위해 상대적으로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이 엄격하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특허권 강화는 외부적 요인, 특히 1987년 미국의 통상 압력(통상법 301조 발동) 이후에야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는 등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한국이 개발도상국 시기에는 선진국에 비해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았음을 시사한다. 이는 후발 주자가 선진 기술을 습득하고 내재화하는 데 필요한 유연성을 제공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 성장을 이루고 기술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지적재산권 보호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2006년 기준 한국의 특허출원 건수는 세계 4위를 기록하는 등 기술 혁신 역량이 크게 성장하였으며 , 2019년에는 내국인 특허 보유 100만 건을 돌파하는 등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혁신 성과를 보호하고 첨단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는 데 중점을 두며 지적재산 보호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술 유출 범죄 양형 기준 강화, 기술 탈취 방지 대책 수립, 한국형 증거 수집 제도 도입, 특허청 행정 조사의 실효성 제고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지식재산을 통해 글로벌 선도 국가로 도약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이러한 지적재산권 정책의 변화는 한국이 개발도상국 시기에는 선진 기술을 '모방'하는 전략을 통해 기술 격차를 줄이고 산업을 육성했으며, 이는 당시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지적재산권 보호 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경제 성장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후에는 자국 기술 보호를 위해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이는 기술 '사다리'를 올라탄 후, 후발 주자들의 모방을 어렵게 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과거 자신들이 활용했던 기술 학습의 경로를 이제는 다른 국가들이 동일하게 이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는 단기적으로는 자국 기업의 혁신 동기를 부여하고 기술 유출을 방지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기술 집약도가 높은 산업에서 특히 중요하며, 특허권 보호 수준이 높을수록 외국인직접투자를 증가시켜 경제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에게는 기술 접근성을 제한하여 성장을 어렵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기술 '사다리'를 이미 올라선 국가가 그 사다리를 치움으로써, 뒤따라 오려는 국가들의 발전을 저해하고 국제적인 기술 격차를 고착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II. 현대 한국 사회 내부의 '사다리 걷어차기' 양상
1. 교육 분야에서의 계층 이동성 저해
한국 사회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는 계층 간 이동을 저해하는 행동을 비판하는 데 자주 언급되는 주요 사회적 화두이다. 특히 교육은 전통적으로 계층 상승의 주요 사다리 역할을 해왔으나 , 최근에는 그 기능이 약화되고 오히려 계층 고착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월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수능 영어, 언어, 수학 점수 백분위가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나, 가구 소득 수준과 자녀의 성적 순위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은 교육이 더 이상 계층 간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복잡한 대학 입시 제도와 명문대 중심의 대학 서열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정시 대 수시 논란, 특히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 논란은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을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학종은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려는 취지였으나, '조국 사태'와 같은 특정 사건들은 학종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심화시키고, 고소득층 자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을 야기했다. 이러한 입시 제도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사회경제적 자원을 가진 계층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상향 이동의 사다리를 제한하는 국내적 '사다리 걷어차기'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특목고·자사고 폐지 논쟁 역시 교육 기회의 평등성 및 계층 이동성 저해와 관련하여 '사다리 걷어차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학교들이 특정 계층의 자녀들에게 유리한 입시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전문직 진입 장벽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논의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및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초기 기수들이 자신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 기수의 정원 축소를 주장하거나, 의사 파업 시 의대 인원 증원을 반대하는 행태는 '후배들 사다리 걷어차기'로 비판받는 구체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이는 특정 직역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규 진입을 제한함으로써, 후배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전통적으로 계층 이동의 주요 사다리였으나 , 최근에는 오히려 계층 고착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복잡한 입시 제도(수시, 학종)와 명문대 서열화가 고소득층 자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며, 교육을 통한 상향 이동의 기회를 제한하는 국내적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기존 자원을 가진 이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성공적인 사회 진입의 경로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육 분야에서의 이러한 '사다리 걷어차기' 인식은 청년층의 좌절감과 사회적 박탈감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과 함께 세대 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을 통한 공정한 경쟁과 상향 이동의 기회가 줄어든다고 인식될 때, 사회 전반의 공정성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이는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저하시키며 사회적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하여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2.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한국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및 고용 격차가 심화되는 이중구조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는 사회 내부의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으로 지목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경총)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종업원 300인 이상 대기업의 대졸 초임은 평균 5,001만 원에 달하는 반면, 같은 해 최저임금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2,500만 원 수준으로, 같은 대졸 청년이라도 대기업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과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 사이에 2배의 격차가 발생한다. 또한 중소기업 임금은 2000년 대기업의 65% 수준에서 2023년 53.6%로 더욱 낮아져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인다.
이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들이 소수의 정규직만을 포섭하고, 다수의 주변 직무를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외부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활용하면서 심화되었다. 이러한 아웃소싱 이후에는 단가 인하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을 제약함으로써,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기업의 전략적 선택과 노동시장 분절화가 결합하여 특정 집단(대기업 정규직)이 이미 확보한 위치를 통해 다른 집단(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상향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핵심적인 국내 사례로 볼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사회 통합의 위기를 초래하고, 원활한 노동 이동과 노동력 활용을 저해하여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2차 노동시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최저임금 수준으로 일하거나 하청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경쟁에서 밀린,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일상의 불평등'은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노동자가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직접적인 비교를 통해 상실감, 비애감, 자존감 하락을 느끼게 하여 한국 사회를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은 정규직-비정규직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연대와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여 사회 통합에 위협이 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 사각지대 해소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또한 기존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이 형편이 어려운 2차 노동시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연대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부산지하철 노사의 임금 양보를 통한 신규 채용 확대 사례나 SK하이닉스의 임금 인상분 기금 조성 사례는 이러한 사회연대전략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예시로 언급된다. 이러한 노력은 노동시장 내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완화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상향 이동의 기회를 제공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3. 특정 산업 및 내수 시장 진입 장벽
한국은 혁신적인 신산업 분야, 특히 모빌리티 플랫폼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 모델의 경우, 기존 산업 보호를 위한 강력한 규제로 인해 신규 진입 장벽이 높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플랫폼 운송사업자가 택시 면허를 빌리거나 사도록 하고 기여금을 내도록 하여 신규 참여자의 비용 부담을 크게 증가시켰다. 이러한 규제는 우버(Uber)의 한국 시장 진입 실패와 국내 유사 서비스의 좌절로 이어졌으며 , 현재 카카오 모빌리티가 택시 호출 플랫폼 시장의 95%를 장악하는 독점적 구조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규제는 소비자 편익과 새로운 시장 창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한국이 글로벌 모빌리티 혁신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기존 산업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규 진입자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서비스 산업 전반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규제 또한 국내적 '사다리 걷어차기'의 형태로 작용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한 30대 규제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서비스 산업은 낮은 생산성과 투자, 만성적인 서비스 수지 적자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는 과도한 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체적인 규제 사례로는 내국인의 공유숙박업 이용 제한, 대형마트의 공휴일 의무휴업 및 온라인 배송 규제, 노인복지주택 내 의료행위 제한, 자율주행 로봇 학습 자료 제한 등이 언급된다. 이러한 규제들은 신산업 창출과 기존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며, 결과적으로 서비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혁신적인 서비스가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함으로써, 잠재적인 성장 동력을 억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내수 시장 보호 정책의 경우, 한국은 특정 산업의 내수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 관세 부과와 같은 정책을 활용하기도 한다. H형강, 부틸 글리콜에테르, 페로실리코망간, 도공 인쇄용지 등 다양한 품목에 대해 덤핑 방지 관세를 부과하여 국내 산업의 피해를 구제하고 경쟁 질서를 회복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보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안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혁신적인 신산업 분야에서 기존 산업 보호를 위한 강력한 규제가 지속되는 현상은 한국이 글로벌 모빌리티 혁신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국내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고 특정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규제 환경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시장에 안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며,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혁신 역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과거 한국이 보호무역을 통해 산업을 육성했던 경험과는 대조적으로, 이제는 혁신과 경쟁을 저해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최근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교역국들이 한국에 대한 보호무역 조치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 한국 역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를 지속할 경우 국제 무역 갈등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수출에 제동을 걸 수 있으며, 다른 신흥국들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한 대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자국 산업 보호와 혁신 촉진, 그리고 국제 통상 질서 내에서의 조화로운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복합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결론
'사다리 걷어차기'는 단순히 국제 경제학적 개념을 넘어, 한국 사회의 복잡한 사회경제적 역학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분석 틀로 확장되어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시기에 선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적 '사다리 걷어차기' 압력을 경험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 역시 유치산업 보호, 중화학공업 육성, 수입선다변화 정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다리'를 활용하여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특히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는 초기 '모방자 전략'을 통해 기술을 흡수했으나, 선진국 진입 이후에는 자국 기술 보호를 위한 지적재산권 강화를 추진하며, 과거의 학습 경로를 후발 주자들이 따르기 어렵게 만드는 역설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사다리 걷어차기'가 국가 발전 단계에 따라 그 주체와 대상이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 한국 사회 내부에서는 교육, 노동,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다리 걷어차기' 양상이 심화되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복잡한 입시 제도와 대학 서열화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 기능을 약화시키고, 특정 전문직 진입 장벽은 기득권층이 후배 세대의 기회를 제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고소득층 자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여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청년층의 좌절감과 '내로남불' 인식을 확산시켜 세대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된다.
노동시장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심화된 이중구조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상향 이동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핵심 사례로 지적된다. 대기업의 아웃소싱 전략과 임금 격차 확대는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2차 노동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일상의 불평등'을 심화시켜 사회적 박탈감을 야기한다. 이는 사회적 연대와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신산업 분야에서는 모빌리티 플랫폼과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기존 산업의 기득권을 보호하며 신규 진입을 어렵게 한다. 이는 국내 시장의 혁신을 저해하고 특정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며, 한국이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규제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현을 가로막는 '사다리 걷어차기'로 기능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의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은 과거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보호주의적 정책들이 선진국 진입 이후에는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장벽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전반의 공정성 논란을 증폭시키고, 계층 간, 세대 간, 산업 간 갈등을 심화시켜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사다리 걷어차기'의 다양한 양상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기득권 보호를 넘어선 포괄적인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노력을 통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공정한 기회와 상향 이동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사다리 다시 놓기'의 노력이 절실하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 사회적 형평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