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on

민족주의자들이 조용히 떠나는 나라

Authors

소리 없이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거리로 나오거나 피켓을 들지 않는다.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시선을 바깥으로 돌린다. 자산을 분산하고, 언어를 익히고, 한국이라는 좌표 하나에 자신의 미래를 걸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원래 민족주의자였다.

이것은 그 선택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글이다.

신뢰가 허물어지는 속도

2026년 6·3 지방선거에서 91개 투표소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겪었다. 선관위는 처음에 50곳이라 발표했다가 숫자를 수정했다. 서울 송파구에서만 20개 투표소가 확인됐고, 잠실7동에서는 투표함이 미반출되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원장이 사퇴했다.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70% 이상이 선관위 해체를 요구했다.

같은 시기, 국방부는 방첩사 해체 방침을 발표했다. 기능은 분산된다고 했지만, 비상계엄 가담을 명분으로 안보 기관의 틀을 바꾸는 결정이 나온 시점과 방향은 여러 해석을 낳았다. 수십 년간 운용되던 대전차 장애물 일부를 철거한다는 계획도 더해졌다.

7월 7일부터는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시행된다. '허위정보'의 판단권이 정부 기관에 귀속되는 구조이며, 위반 시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 법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공개 성명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동맹국이 타국 국내법에 이 정도로 개입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사법부 역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전직 대법관, 헌재 재판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을 포함한 법조인과 교수 1004명은 시국선언에서 "민주당 편 판사를 대거 임명해 대법원을 장악하고 사실상의 4심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고려대 차진아 교수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대법관 12명을 증원한 뒤 사법부가 행정부 통제 기능을 상실한 사례를 언급했다. 비교 대상이 베네수엘라다.

기득권의 지형

한편 부동산 시장은 다른 이야기를 해왔다. 직전 진보 정권 5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26차례의 대책이 나왔고, 대책이 나올 때마다 가격이 올랐다. 현 정권도 가격을 잡겠다고 한다. 시장은 믿지 않는다.

구조는 단순하다. 집을 가진 사람은 집값이 오를수록 자산이 늘고, 그 자산을 지켜줄 정권을 지지한다. 40-50대 자산 보유층이 특정 정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 되는 것은 이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 평등을 말하는 정치 세력이 자산 불평등의 수혜자들 위에 서 있는 역설이다.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를 기록했다. 세계 최저다. 집을 살 수 없고,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 이전에 구조가 만든 귀결이다. 자산 계급은 고착되고, 진입 장벽은 높아지고, 다음 세대는 그 장벽 앞에서 방향을 바꾼다.

글로벌리스트의 탄생

이 지형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들 중 일부는 다른 결론을 내린다.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는 그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전제 위에 선다. 선거 관리가 신뢰를 잃고, 사법부가 정치화되고, 표현이 법으로 제한되기 시작하고, 자산 계급이 고착되는 환경에서 그 전제는 흔들린다. 민족주의는 감정이기 이전에 계산이다. 그 계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람은 프레임 자체를 바꾼다.

글로벌리스트의 논리는 단순하다. 자본, 기술, 네트워크를 특정 국가에 종속시키지 않는다. 어떤 정권이 집권하든, 어떤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기울든, 그 흐름을 읽고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다. 국적은 이동의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이것은 냉소가 아니다. 시대 읽기다.

신 계급주의 시대라는 말이 쓰인다.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던 사회계약이 약해지고, 자산과 정보와 네트워크를 가진 쪽이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새로운 계층 구조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 안에서 민족이라는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유효한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다.

조용히 시선을 돌린 사람들은 이미 그 판단을 내렸다. 그들은 떠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더 넓게 바라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