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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명리학(四柱命理學)에 대한 심층 보고서: 기원, 원리, 운명 결정론 및 현대적 신뢰성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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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분석 서론: 명리학에 대한 학문적 담론과 접근 방식
1.1. 사주팔자 및 명리학 개념 정의
사주 명리학(四柱命理學)은 고대 동양 철학에 뿌리를 둔 체계적인 운명 예측 시스템으로, 인간의 삶의 궤적을 시간적, 공간적 에너지의 상호작용으로 해석한다. 이 시스템의 핵심 개념은 '사주팔자'에 있다. 사주(四柱)는 개인이 태어난 년(年), 월(月), 일(日), 시(時)의 네 가지 시간적 기둥을 의미하며, 이는 곧 생명의 근본적인 환경적 조건을 포착하는 틀이 된다. 각 기둥은 하늘의 기운을 상징하는 천간(天干)과 땅의 기운을 상징하는 지지(地支) 두 글자로 표현된다.
이 네 기둥, 여덟 글자를 합하여 팔자(八字)라 칭하며, 이를 통칭하여 사주팔자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이 사주팔자에 한 개인의 한평생 운세가 달려 있다고 여겼다.
명리학은 이 여덟 글자에 담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구성과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인간의 성격, 잠재력,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학문이다. 명리학적 해석은 단순히 점술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타고난 운명과 환경적 제약을 이해하는 중요한 동양 철학적 토대를 제공해왔다.
1.2. 보고서의 목표 및 접근 방식
사주 명리학은 한국인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운명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이 학문은 종종 '수긍하고 살아가야 할 운명의 틀'인 동시에, '극복하고 이겨나가야 할 양가감정적(兩價感情的)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이중적인 인식은 사주 명리가 단순한 숙명론을 넘어 인간의 능동적인 실존적 선택과 결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본 보고서는 사주 명리학을 미신과 과학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 내적 논리 구조와 해석학적 체계를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명리학의 구조적 결정론(원국)과 실존적 개연론(운의 활용 및 의지)의 상호작용을 심층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명리학이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삶과 선택에 대해 어떤 의미 있는 담론을 제공할 수 있는지 논한다.
명리학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기능은 개인의 구조적 출발점을 인정하는 '운명 수용'과,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자기 개척'이라는 한국 문화의 핵심 가치 간의 영원한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구조화된 언어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이는 명리학을 개인의 삶과 환경적 조건을 해석하는 서사적 해명 시스템으로서 바라보는 학술적 관점을 정립한다.
II. 사주팔자의 동양 철학적 기원과 역사적 발전
2.1. 기원적 토대: 음양오행 및 천인합일 사상
사주 명리학의 근본 원리는 고대 중국의 우주론적 사유체계인 음양오행(陰陽五行)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음양오행은 동양 철학의 기초 원리이며, 모든 자연 현상과 인간사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틀로서 명리학적 해석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 철학적 시스템에서 천간(天干)은 하늘의 기운(본체, 근원)이 변화하는 것을, 지지(地支)는 땅의 기운이 변화하는 것을 음양오행의 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천간과 지지는 각각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10글자와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12글자로 구성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우주적 에너지의 변화가 인간의 생명 활동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즉, 개인의 운명은 하늘과 땅의 근원적 에너지 변화가 교차하는 순간에 포착된 에너지 패턴의 일부라는 관점이다.
2.2. 간지(干支) 체계의 발전과 명리학의 체계화
천간 10글자와 지지 12글자를 순서대로 짝지어 만든 60년 주기의 시간 시스템을 육십갑자(六十甲子)라고 한다. 이 육십갑자는 고대부터 시간과 길흉화복을 점치는 데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으며, 명리학의 기본적인 시간 계측 단위가 된다.
명리학은 초기 사주(四柱) 이론에서 출발하였으나, 중세 시대, 특히 당대(唐代)와 송대(宋代)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과 정교화를 거쳐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 명리학은 추상적인 사주 개념을 구체적인 분석 틀인 팔자(八字) 이론으로 확립하였다. 팔자 이론은 년, 월, 일, 시의 네 기둥을 각각 천간과 지지로 나누어 총 여덟 글자를 모두 고려하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기존보다 훨씬 정교하고 미세한 개인 분석 방법을 제공하게 되었다.
이러한 체계화 과정에서 《연해자평(淵海子平)》, 《삼명통회(三命通會)》와 같은 권위 있는 명리학 전문 서적들이 출간되었다. 이 서적들은 명리학 지식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널리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명리학의 역사는 단순한 미신적 관습의 축적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친 고전 우주론을 개별 인간의 운명 해석을 위한 미시적인 해석학적 도구로 성공적으로 전환하고 체계화한 지적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III. 명식(命式) 산출의 기술적 원리와 구조: Saju Myeongli의 내적 논리
3.1. 사주 정립의 기본 원칙: 시간의 캡처
사주(命式)를 정립하는 과정은 출생 순간의 우주적 에너지 분포를 정밀하게 포착하는 고도의 천문학적 계산에 기반한다. 사주는 태어난 해, 월, 일, 시를 나타내는 네 개의 기둥(년주, 월주, 일주, 시주)으로 구성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기둥의 시간 경계를 정하는 원칙이다.
- 년주(年柱, 태세): 출생 연도의 간지를 나타내며, 선천적인 영향, 조상, 국가적 운명을 상징한다.
- 월주(月柱, 월건): 출생 월의 간지를 나타내며, 계절의 기운, 부모, 사회 환경, 그리고 음양오행의 강약(强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 일주(日柱, 일진): 출생 일의 간지 중 천간(日干)은 '나' 자신을, 지지(日支)는 배우자 및 내면적 기질을 상징한다.
- 시주(時柱, 시진): 출생 시의 간지이며, 자녀, 직업의 결실, 말년 운 등을 상징한다.
3.2. 정밀한 시간 구분의 핵심: 절기(節氣)의 적용
사주 명리에서 시간의 경계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리는 태양의 움직임에 기반한 절기(節氣)의 적용이다. 이는 일반적인 달력(양력이나 음력)의 날짜 구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명리학은 태음력(달의 주기)이 아닌 태양력(절기의 주기)을 기준으로 에너지를 산출한다.
- 년주 결정의 기준: 년주를 세울 때, 새해의 시작은 양력 1월 1일이 아니라 입춘(立春) 절입일을 기준으로 한다. 만약 어떤 개인이 당해 연도의 입춘 전에 출생하였다면, 비록 달력상으로는 새해일지라도 명리학적으로는 전년도(작년)의 년주를 적용해야 한다.
- 월주 결정의 기준: 월주(월건)는 계절의 기운을 표시하며, 그 시작과 끝은 각 월의 절입일(경칩, 청명, 입하 등)에 의해 엄격하게 결정된다. 예를 들어, 3월생이더라도 묘월(卯月)의 시작인 경칩 절입일보다 생일이 빠르면 전달인 인월(寅月)의 월주를 사용해야 한다. 월지(月支)는 12지지를 고정적으로 사용하지만, 월간(月干)은 해당 연도의 천간(년주 천간)에 따라 정해진 규칙(五虎遁, 오호둔)에 따라 변화한다.
이러한 절기에 대한 엄격한 준수는 명리학이 구조적 결정론을 획득하는 근본적인 원천이다. 출생 시각이 절기 경계에 따라 단 몇 분 차이만 나더라도 년주나 월주가 완전히 달라져, 팔자 여덟 글자의 오행 구성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명리학의 핵심은 이처럼 천문학적 전환점을 기준으로 개인에게 부여된 우주 에너지의 구성(Won-guk)을 정밀하게 포착하는 고대 점성술적 계산법에 기반하고 있다.
3.3. 명식 구조의 이해: 오행의 균형
명식(사주팔자)의 해석은 궁극적으로 다섯 가지 에너지인 오행(목, 화, 토, 금, 수)의 균형과 편중 정도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오행의 조화로운 상태 또는 지나친 편중 상태가 사주의 강약(强弱), 즉 선천적 잠재력과 기질의 핵심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명리학적 관점에서 원국은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에너지 구성과 그 한계를 규정하는 고정된 구조이며, 마치 컴퓨터의 하드웨어 사양이나 운영 체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원국이 바로 인간의 신체적 특징, 건강, 인간관계를 맺는 마음자리, 공부 머리, 손재주 등 사는 동안 필요한 정보가 빼곡하게 담겨 있는 '나라는 사람의 사용법'이 되는 것이다.
Table 1: 사주팔자의 기본 구조 및 시간 결정 원리
구분 (四柱) | 명칭 | 결정 기준 (天干/地支) | 시간 경계 기준 | 주요 의미 |
---|---|---|---|---|
년주 (年柱) | 태세 (太歲) | 출생 연도의 干支 | 입춘 (立春) 절입일 | 선천적 영향, 조상, 국가적 운명 |
월주 (月柱) | 월건 (月建) | 출생 월의 干支 | 월별 절기 (節氣) 경계일 | 계절, 부모, 사회 환경, 음양오행의 氣 |
일주 (日柱) | 일진 (日辰) | 출생 일의 干支 | 만세력상의 일진 | '나' 자신 (日干), 배우자, 내면적 기질 |
시주 (時柱) | 시진 (時辰) | 출생 시의 干支 | 12시진 (약 2시간 단위) | 자녀, 직업의 결실, 말년 운 |
IV. 사주 해석 방법론의 심층 분석: 원국(原局)과 운(運)의 역할 분담
명리학의 해석 과정은 단순히 원국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원국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적 환경, 즉 '운(運)'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집중된다. 이는 선천적인 구조(Won-guk)와 후천적인 조건(Un)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4.1. 원국(原局): 타고난 잠재력과 구조 (The Fixed Potential)
원국은 개인이 태어난 순간에 각인된 불변의 에너지 구조이다. 이는 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잠재력, 기질, 그리고 능력의 최대 범위와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원국에 재성(財星)의 기운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재물을 다루거나 관리하는 잠재력이 높다고 해석된다. 원국은 오행과 십성의 구성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생극제화)을 통해 개인의 삶의 패턴을 구조적으로 미리 설정한다.
4.2. 운(運): 시간적 환경과 조건 (The Temporal Flow)
운(運)은 원국이 놓이는 시간의 흐름, 즉 환경과 조건의 변화를 의미한다. 운은 크게 10년 단위의 장기적인 환경 변화인 대운(大運)과 1년 단위의 단기적인 환경 변화인 세운(歲運) 등으로 나뉜다.
운의 역할은 마치 인생의 경로를 미리 알려주는 '내비게이션'과 같다. 이는 앞길의 방해물(어려움)이나 기회(길)를 미리 알려주는 단서로서 기능한다. 즉, 운은 원국이 규정한 내부적 잠재력이 외부 환경과 만나 발현되는 시간적 타이밍을 제시한다.
4.3. 상호작용의 심화 해석: 십성(十星)의 충돌과 제어
명리학적 해석의 깊이는 운이 원국과 대운에 미치는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데서 나온다. 운에서 들어온 특정한 십성(재성, 관성, 식상 등)은 원국의 기존 오행 및 십성과 단순하게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충돌(沖), 합(合), 형(刑), 해(害) 및 극(克)과 제(制)의 관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식상(食傷)은 관(官)을 제어하고, 재(財)는 인(印)을 억제하는 상극 관계를 일으킨다. 이러한 억제, 자극, 제어 관계 속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현실 사건이 발생한다. 단순히 운이 좋다고 단정하거나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복잡한 구조적 상호작용 때문이다. 한 기운이 다른 기운을 제어하거나 균형을 맞출 때, 원국에 잠재된 기운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
명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원국은 개인의 근본적인 능력을 규정하는 고정된 아키텍처(운영체제)이며, 운은 이 아키텍처에 주어지는 외부 입력값(I/O 이벤트)에 해당한다. 운의 변화는 원국의 근본적인 구조적 한계(하드웨어)를 완전히 뒤집을 수는 없지만, 원국이 정의한 능력 범위 내에서 잠재력을 극대화하거나 약점을 보완(소프트웨어 최적화)할 수 있는 환경 변화를 제공한다. 따라서 운의 해석은 원국의 잠재력에 따라 환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보고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V. 운명 결정론에 대한 명리학적 논의: 운명아와 의지아의 상보론
5.1. 운명 담론의 이분법적 비판
사주팔자가 곧 운명인지, 아니면 바꿀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동양 철학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핵심적인 주제이다. 한국 사회의 운명 담론은 전통적으로 '운명 결정론(宿命論)'과 '자유의지론(自由意志論)'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측면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학문적 관점에서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은 인간의 실존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운명은 선천적 요인(사주 원국)이나 순수한 자유의지에 따른 필연적 결정이 아니라, 이 두 요소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며 형성되는 상대적이고 개연적인 궤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5.2. 운명아(運命我)와 의지아(意志我)의 상보적 작용
인간의 운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학문적 개념은 운명아(運命我)와 의지아(意志我)의 상보 작용(相補作用)이다.
- 운명아 (Unmyeong-a): 운명아는 태어난 순간부터 주어지는 선천적 요인과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조건을 의미하며, 이는 인생의 기본적인 씨줄(Latitude)에 비유된다. 명리학적으로 이는 곧 사주 원국의 고정된 에너지 구성을 의미한다.
- 의지아 (Eui-ji-a): 의지아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 후천적인 노력, 그리고 환경을 극복하려는 능동적인 의지를 의미하며, 이는 인생의 기본적인 날줄(Longitude)에 비유된다. 명리학에서 운을 참고하여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인간의 운명은 운명아(틀)와 의지아(선택)가 교차하며 직조되는 현실적인 궤적이다. 따라서 운명의 최종 결정은 필연적 결정이 아니라 상대적, 확률적, 가능적, 개연적 결정으로 나타난다. 이 관점은 인간의 노력을 운명을 따르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닌, 운명의 확률적 결과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Table 2: 운명관의 학문적 해체: 운명아(運命我)와 의지아(意志我)의 상보론
요소 | 명칭 | 역할/비유 | 명리학적 대응 | 운명 결정의 성격 |
---|---|---|---|---|
선천적 요인 | 운명아 (Unmyeong-a) | 씨줄 (Latitude), 인생의 기본적인 틀 | 사주 원국 (Won-guk) | 불가피성, 잠재력 |
후천적 요인 | 의지아 (Eui-ji-a) | 날줄 (Longitude), 선택과 노력 | 대운/세운 활용, 인간적 노력 | 가능성, 확률성 (Stochasticity) |
결과 | 인간의 운명 | 상보 작용을 통해 짜인 현실적 궤적 | 명국 + 환경 + 의지의 상호작용 | 상대적, 개연적 결정 (Relative, Probable Decision) |
5.3. 사주팔자가 바뀌지 않으면 운명도 바뀌지 않은가
사주팔자 원국은 선천적인 운명아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이는 결코 바뀌지 않는 고정된 구조이다. 그러나 운명은 이 원국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명리학은 정해진 원국을 거부하거나 맹신하는 대신, 참고(參考)하여 현명하게 활용할 때 비로소 긍정적인 솔루션이 된다고 제시한다.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원국 자체를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지아를 통해 운명의 확률적 궤적을 최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명리학이 어려운 운(運)의 흐름을 '전방 몇 미터 안에 방해물이 있음'이라고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처럼 기능할 때, 운전자가 이 정보를 무시하고 고집대로 운전할 수도 있지만, 정보를 참고하여 속도를 늦추고 주의를 기울이는 선택(의지아)을 할 수 있다.
현대 과학 역시 물질에 대한 이해에서 진리를 필연적, 절대적 위치에 두지 않고, 우연, 모호, 개연 등의 요소를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적 인식은 명리학의 운명관인 '상대적, 확률적 결정'과 일치한다. 따라서 사주 명리학의 실질적인 가치는 피할 수 없는 사건을 예측하는 능력보다는, 혼란스러운 삶의 조건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실존적 전략을 제공하는 데 있다.
VI. 사주팔자의 현대적 신뢰성 평가와 비판적 수용
6.1. 과학적 검증의 한계와 유사과학 논란
사주 명리학은 과학적 접근 방식을 통해 그 신뢰성을 입증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사주팔자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현재의 과학 지식 및 방법론과 대치된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명리학이 예측하는 운명의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타당함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이로 인해 종종 유사과학(Pseudoscience)으로 분류되곤 한다.
이는 사주 명리학의 복잡성과 난해함, 그리고 예측의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운명 함수를 구성하는 모든 조건이 같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유기적 존재가 그려내는 인생의 궤적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명리학 내부의 주장 또한, 예측의 필연성보다는 개연성을 강조하여 과학적 검증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6.2. 심리학적 기제: 해석의 비판적 분석
사주 명리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심리학적 및 인지적 기제가 작용한다.
- 바넘 효과 (Barnum Effect): 사주나 점술 해석이 신뢰받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넘 효과이다. 점술가가 '당신은 활발해 보이지만 소심한 구석이 있습니다'와 같이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내담자는 이를 '나만의 특징'이라고 착각하며 자신의 운명과 딱 맞는 이야기라고 강하게 믿게 된다. 이는 해석의 일반적인 성격을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시키는 인지적 오류에서 발생한다.
- 자기 충족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 사람들이 점괘나 사주 해석을 들었을 때, 그 결과가 맞든 맞지 않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자신에게 맞게 해석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간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일관성(Consistency)'을 유지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압력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어진 정보를 기존의 믿음이나 예측과 일관성 있게 끼워 맞추려 노력함으로써 마음의 긴장을 해소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사주 해석이 예측의 정확성을 담보하기보다는, 개인의 서사 구조를 형성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한국 문화에서는 사건의 원인을 개인 내부의 노력 부족보다 외부의 힘(운명, 사주)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서양인보다 상대적으로 강한데, 이는 사주 명리학이 개인적 실패에 대한 부담을 외부 시스템에 전가하고 심리적 방어 기제를 제공하는 사회 인지적 효용성을 갖게 한다.
6.3. 운명 철학의 실존적 가치
이러한 비판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명리학의 가치는 단순한 길흉 예측을 넘어선다. 명리학은 운명의 틀(운명아)을 정의함으로써,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와 집중해야 할 영역을 구분할 수 있는 구조화된 지도를 제공한다.
운명을 맹신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거부하면 거만한 사람이 되지만, 참고하면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명리학적 조언은, 이 학문이 궁극적으로 실존적 전략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명리학은 삶의 개연성(확률성)을 예측하고,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방향으로 의지(의지아)를 투사할 수 있도록 돕는 동양 운명 철학의 심오한 해석학으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VII. 결론: 동양 운명철학의 실존적 가치와 학문적 제언
본 보고서는 사주 명리학이 단순한 점술을 넘어, 고대 동양의 우주론적 원리(음양오행)와 정밀한 천문학적 계산(절입일을 기준으로 한 간지 산출)에 기반하여 인간의 선천적 구조(원국)를 정의하는 고도로 체계화된 시스템임을 확인하였다.
명리학적 세계관에서 운명은 고정된 필연이 아니다. 명리학은 운명아(Unmyeong-a)라는 구조적 틀과 의지아(Eui-ji-a)라는 능동적 선택의 상보 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상대적이고 확률적인 궤적을 제시한다. 사주팔자 원국이 정한 잠재력과 한계는 불변하지만, 운(運)을 읽고 인간적 노력(의지아)을 통해 운명의 방향성을 조절함으로써, 삶의 궤적을 긍정적으로 최적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명리학은 운의 흐름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긍정 솔루션으로서 기능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명리학의 과학적 신뢰성은 심리학적 기제(바넘 효과, 자기 충족적 예언)에 의해 상당 부분 좌우되지만, 그 문화적, 실존적 효용성은 부정할 수 없다. 사주 명리학은 예측의 정확성이라는 좁은 렌즈를 넘어, 인간의 존재와 개연성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개인이 자신의 삶의 서사를 구축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얻도록 돕는 동양 철학적 도구로 학문적 접근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